하차하겠습니다.
이 여정에서 하차하겠습니다.
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서 어거지로 하겠다 아자아자 외치다가 제 발에 걸려 자빠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.
나는 자신감이 좀 부족한 사람이라 너무나도 잘난 사람들 틈에 있으면 "오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어 분발해야지" 하는 꼴로 분주히 따라가는 것이 맞다.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 "난 저렇게 될 수 없어" 라고 생각하게 되니 의욕이 점점 사라지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에너지도 사라지게 되고 만 것이다.
그럼 새로운 곳에 간다고 그게 달라지겠는가?
는 확신할 수 없지만, 어쨌든 억지로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울상되어 틈바구니에 끼어 앉아 있는 것보다는 그냥 내 마음 편하자고 올해부터는 함께 해왔던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기로 했다.
돈,
돈이 문제였을까? 노후 준비를 열심히 해놔야한다고 매일 같이 이야기하는 부모의 영향이었을까, 나도 모르게 습이 되어버린 내 장래에 대한 계획이 뿌얘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마음이 조급해진 것은 사실이다. 이돈으로 내가 마흔, 쉰 되어서 잘 살 수 있을까. 나는 그 때 뭘 하고 있지. 하는 막연한 걱정과 불안. 그래서 선배세대의 피디들을 만나면 그런것을 살피고는 했다. 뭐 해먹고 살고 있는걸까 저 사람들은?
그런데 보면 그렇게 이것 저것 다방면으로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. 어떤 것을 기획하고, 진행하고 또 운영하면서 뭔가 도모해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(거기서 에너지를 얻는 것일까?) 그게 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. 그렇다면 나는 그게 되는 것인지 돌아봐야했다.
친구들을 붙잡고 하소연(고민상담이라고 생각하고 싶다)할 때 매일 같이 이야기했던 것은 이것이었다.
- 나는 프리랜서가 안될 것 같아, PD 일이 나랑 안맞는 것 같아.
계속 말해서 그냥 내 뼈에 새겨진 걸까? 나름대로 일은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속에서 부대끼는 마음이 드는 건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. 사람 만나는 것 재미있고, 즐겁다. 일정 조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. 잘할 수 있다. 그건 일로 잘 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.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. 연극에 대한 깊은 애정. 이 그것이었다.
나는 연극을 좋아했나? 연극이 무엇일까? 그리고 나는 이것을 잘 읽어낼 수 있나? 하는 것들.
근데 내가 속해있던 집단이 특히 그것을 관찰해야만 하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더 비교하게 되고 작아진 것도 있는 것 같다.
재미있고 쉽게쉽게 갑시다! 그런데 거기서 의미를 찾아봅시다! 하는 집단이었으면 괜찮았을까? 그런데 그러면 안되는 곳이어서 그건 반대다.
연극이라는 장르가 드라마에서 다원적 예술로 그리고 블랙박스가 아닌 거리로, 대안공간으로 다양한 형태로 뻗어 나갈 때 거기서 잡아내야 하는 의미나 이야기들은 점점 추상적으로 변해간다. 단순하게만 느껴졌던 스토리나 주제는 이것인가? 저것인가? 물음표만 둥둥 떠다니게 만들고 내가 알아서 답을 찾아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. "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" 같은 목적지 없는 항해 같은 것.
나는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어렵다. 언제나 심판대에 오른 느낌이어서 자신이 없었다. 내가 말하는게 맞나? 아는 척 하고 있는 것 아닌가? 스스로 자문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. 나는 느낌표에서 물음표, 그리고 마침표로 넘어가고 싶다. 항상 물음표에서 멈췄는데, 그냥 그러려니- 하는 자세로 일을 바라봐도 좋았을 텐데 그게 안된다. 내가 찾은 이 복병. 연극에 대한 깊은 애정 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.
오히려 좋아하고 잘 하고 싶으니까 욕심이 나고, 조급한 마음에 다른 사람처럼 되지 못할 걸 알아서 지레 겁먹고 포기하게 되는 것.
그럼 그냥 내가 스스로 느낌표에서 물음표 그리고 마침표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.
자,
그럼 다시 돌아와서. 이런 마음으로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?
건강하고 온전한 마음으로는 불가능했으리라 본다. 사소한 것에 신경쓰고 가자미 눈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.
스스로에게 향해야 할 따가운 시선이 남들을 향해있었을것 같다.
그럼 돈이 문제가 아니었나?
응 돈 문제는 아니었다. 이건 그만둘 이유를 만들기 위한 또다른 이유였던 것 같다.
거기에 더해 열심히 "회사"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의 SNS를 보게 되니, 이 마음이 더 커졌던 것이다.
내가 진짜로 원했던게 뭐지? <
하는 마음
그래도 재미있고 유익하게 3년 일했다.
감사할 따름이다.